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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월

no mingzi 2023. 4. 9. 18:07

[풍월-그 둘 모두 사랑을 몰랐다.]

 

 

우리 집은 이 지역사람들이라면 모두 인정하는 방가이다. 어렸을 때 한번 사당이라는 곳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말썽을 부리고 정신없이 도망쳐 달려가다 들어갔던 것인데 그때의 이상한 광경은 꽤 오래 내 머릿속에 남았다. 나이든 할아버지가 수 십 명이나 있었는데 갑자기 무릎을 꿇고 통곡을 해댔다.

 

무례하다! 여자아이가 사당에 들어오다니!”

 

벼락같은 소리에 얼마나 놀랬었는지. 사당에서 쫓겨나오면서 들은 호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집에서는 항상 아편냄새가 났고 여자들이 넘쳐났다. 그나마 쭝량이 있었을 때는 나았다. 그 아인 항상 날 즐겁게 해주었었다. 그런데 오빠가 아편중독으로 폐인이 되어 집안이 뒤숭숭할 때 그 아이도 어디론가 가버렸다. 가문의 후계자였던 오빠가 그렇게 되고 나서 집안은 들의 손에 굴러갔다. 그렇게 시간만 흐르고 난 정약된 가문에 시집갔다. 그렇게 번창했던 방씨 가문이 기울어 가고 있던 터라 난 그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유학 가있는 동안 나는 결국 그 집에서 쫓겨났다.

아편쟁이에 파혼녀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의 후계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동안 얌전히 있었던 덕에 나는 그 후계자로 선정되었다. 여자의 몸이라는 이유로 방단이라는 양자를 들였다.

 

쭝량이 돌아왔다. 너무도 늠름해진 모습. 어딘가 총명해진 듯 세련된 모습. 예전의 그가 아니다.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암울한 이곳에, 내 마음에 그가 잔잔히 빛이 되어 다가온다.

그는 내게 달라진 세상에 대해 말해줬다. 내 방에 와 가득 쌓인 책과 비단 조각들을 보고는 소리쳤다. 언제까지 이런 것들 속에서 갇혀 있을 거냐. 그가 살고 있는 곳에서 여자들은 짧은 치마를 입고 혁명을 위해 싸운다고 했다. 그 곳에 가고 싶다. 그가 살고 있는 곳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그 곳 말이다. 정말 멋있을 것 같다.

하루는 그가 늘 타고 다니는 자전거가 눈에 들어 타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빙글빙글. 아슬아슬. 그의 주위를 돌았다. 나만큼 어지러웠던 걸까. 몽롱하게 나를 바라보던 그는 내게 입맞춤을 했다. 그것으로 그의 마음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여전히 날 차갑게 바라본다.

내가 여자로 보이지 않는 걸까? 아버지는 소녀보다는 여자가 더 예쁘다고 하셨어.’

난 그래서 여자가 되기로 했다. 그리 어렵진 않을 것 같다. 아버지가 좋아했던 그 여자들처럼 그들이 했던 대로 하면 되겠지. 그런데 어떻게 연습하지? 그래 팡두안이 있지? 그 아이와 함께 하면 될 것 같다. 아냐. 손은 이 쪽으로. 이렇게 해야 편하잖아. 맞아. 그렇게 해야해.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 아이. 그에게 가려는 나를 말린다. 혹시 날 좋아했던가. 몰라. 몰라. 난 지금 그를 사랑하기도 정신이 없으니까.

손은 이쪽으로 몸은 이렇게.. 아니에요. 팡두안과 연습했단 말이에요. 이렇게 해야 해요.”

연습대로 하려고 했던 것뿐인데. 계속되는 내 지적에 기분이 상한 건가? 화를 내고 가버린다. 안되는데. 이대로 보낼 수 없는데.. 다시 그를 찾아갔다. 그래. 그런 연습. 그것대로 해야 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 그렇게 이전의 경험의 기억을 버리고 나니 우리 둘 진심으로 하나가 되었다. 사랑해. 사랑해. 그를 사랑하게 됐다.

그와 베이징에 가야지. 다 무너져 가는 이 곳은 버리고 그와 함께 그 새로운 터전으로 가야지.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 훨씬 행복하게.

그가 사라졌다. 분명 그 곳에 서서 기다리라고 했다. 금방 돌아온다고 했다. 정신없이 헤매다 작별 인사를 한 지 얼마 안 된 팡두안을 찾았다. 그가 사라졌다. 말도 안돼. 그가 사라졌다.

그는 북경에 갔을까?” 팡두안에게 계속 물었다. 아니 내 자신에게. 그 아이의 대답 따위 그리 중요하지도 않다. 아냐. 그가 돌아올 것이다. 날 한참 찾았다고. 그 곳에서 하루나절을 헤매며 찾았다고. 금방 돌아오지 않아 미안하다고. 어서 베이징으로 떠나자고. 역시 맞았다. 그의 친구들이 날 데리러 왔다. 그가 상하이에 있단다. 분명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이리라. 급하게 일을 정리하고 친구를 보내 날 데리러 오게 한 것일 것이다. 어떤 설명도 필요 없다. 어서 그를 보고 싶다.

그곳은 정말 멋진 곳이었다. 그와 비슷한 차림의 남자들, 짧은 치마의 여자들. 서양인들이 즐긴다는 festival도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멋진 곳에 그가 살고 있구나. 방단도 눈이 휘둥그레져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느 복잡한 뒷골목에 짐을 풀었다. 내일 그를 만날 수 있다. 숙소 아래로 내다보이는 여자들과 홍등이 꺼질 때까지. 그리고 날이 밝아오는 내내 그를 생각했다. 아침을 조금 지나 오후가 다가올 무렵 한 건물로 갔다. 하지만 그곳에 쭝량은 없고 또 다른 동창들 둘만이 있었다. 약간의 의심이 들었지만 곧 차분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한 남자가 방안의 어둡게 했던 검은 커튼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는 또 다른 건물이 있었는데 그쪽은 붉은색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커튼 하나가 걷히더니 진하게 끌어안고 있는 두 남녀가 보였다. 그런데. 그 남자가 쭝량이었다. 여자는 언젠가 그가 지니고 있던 사진첩의 주인공이었다. 당장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그들을 떼어놓고 싶었다.

 

그에게 달려간 것은 동창이라는 두 남자였다. 문밖으로 나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가 있는 방에 간 그들은 쭝량을 검은 천으로 뒤집어씌우고 여자를 협박하는 것 같았다.

 

내 옆에 남아 있던 남자가 말한다. 당신이 사랑한다는 쭝량은 저런 사람이다. 남편이 있는 여자들을 유혹해서 그녀들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상하이에서도 유명한 바람둥이이다.

 

저 놈이 큰형님 사업에 한 밑천이지.이봐, 당신도 저놈한테 속은 거야.”

 

건너편은 그들의 거래가 마무리 되고 있는 듯 하다. 잠깐 이 쪽을 멍하니 바라보던 여자는 문을 나서더니 갑자기 난간 아래로 뛰어내린다. 정말 사랑이었던가. 갑작스런 상황에 그들 모두가 도망을 갔다. 쭝량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고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그들이 가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에게 하얀 천을 덮어 주었다. 그녀. 사랑이라는 잘못을 했던 건가.

 

날 사랑하나요?”

 

어쩌면 그녀도 물었을지 모르는 질문을 그에게 했다. 대답하지 못하는 그. 아직 그녀를 사랑하는 것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인가. 방단과 함께 상해를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때 나의 남편이었던 남자가 나를 찾아왔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온 자의 여유인가. 그는 우리의 파혼은 부모님의 일방적인 결정이고 자신은 내가 아편쟁이라도 상관없다는 입장이었다. 마치 쭝량과의 사랑이 한 순간의 꿈인 듯 했다. 이제야 원래 내 자리에 돌아온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이 날 그 곳까지 이끌었던가. 난 쭝량이 아니라 어떤 이였어도 상관없었던 건가. 그때 나 너무 힘들어서 그래서 그가 내가 찾는 무언가 일거라 착각했나보다. 난 그의 사랑을 잃고 죽음을 택한 그녀만큼의 열정은 없었나보다. 그녀였다면 이렇게 쉽게 그를 떠나지도 않았겠지. 그래. 환상이었다. 모두 거짓이었다. 그래. 그곳. 내가 생각한 만큼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잖아. 그래. 이제 나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이곳에서 이전의 삶을 살자. 그런데. 왜 이렇게 슬픈걸까.

 

그런데 그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어떡하지. 그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돌아온 약혼자와 결혼한다면 나.. 평범한 가정을 이룰 수도 있을 텐데. 이제 와서 그와의 사랑? 아니다. 나 더 이상 그 부질없는 사랑놀이에 목매지 않을 거다. 환상을 쫓는 바보 같은 짓은 한번으로 족하다. 그만두자. 그를 보내자. 그에 대한 아쉬움을 그가 확실히 접게 해주는구나. 그래. 그가 서 있는 곳. 이제 내가 이미 발을 빼버린 곳이다. 더 이상 다시 내딛을 열정 같은 건 없는 것이다. 그가 있던 곳과 내가 있는 이곳의 중간 어딘가에 걸쳐 방황하는 그에게 나의 결정이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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